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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자열 LS전선 회장의 '자전거 예찬'_'두바퀴 천국'을 꿈꾸는 남자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2-03-01
조회수
1666
내용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늦봄 어느 일요일, 가수 김창완과의 저녁 자리에서였다. 식당 밖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요란하더니, 한 사내가 아래위 가죽옷 차림에 검정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들어왔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마니아인 김창완의 동호회원쯤이라 짐작했는데, 그가 구자열(59) ls전선 회장이었다. 김창완과는 서울 중앙중 동기동창이라고 했다. 대기업 회장이 수행원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것이 매우 신선했다.

 
그는 "오토바이는 이제 초보 수준이고, 사실 나는 자전거 마니아"라며 자전거를 한없이 예찬했다. "오토바이로 귀가해야 해서"라며 막걸리를 한 잔만 들이켠 그는 다시 오토바이를 꽈르릉 깨우더니 올라탔다. 그의 오토바이 후미등이 빨간 점으로 멀어질 때 나는 생각했다. 멋있다.
 

난 한다면 하는 '하고잽이'
8일간 알프스 산 18개 넘는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중도포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페달 밟으니, 어쨌든 가더라

자전거 좀 탄다는 이들 사이에서 구 회장은 이미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 2002년 산악자전거로 8일간 알프스 산 18개를 넘는 '트랜스 알프스 챌린지'를 완주했다.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를 잇는 이 산들 중 9개가 해발 2000m를 넘는다. 당시 함께 간 동호회원 3명과 함께 구 회장은 '동양인 최초 트랜스 알프스 완주자'가 됐다. 2009년부터 대한사이클연맹 회장도 맡고 있는 그를 지난 22일 서울 용산의 ls그룹 사옥에서 만났다. 이 건물 2층엔 편안한 분위기의 접견실 내지 미팅 룸이 있는데,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클래식 실내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 살 때 두발 자전거를 탔다는데, 그게 가능합니까.

"우리 나이로 네 살 때인데, 신문에서는 그걸 세 살로 표기하잖아요. 일곱살 위인 사촌형(구자홍 ls그룹 회장)이 열한 살 때 두발짜리 삼천리 자전거를 샀는데, 우리 어머니가 똑같은 자전거를 내게 사주신 겁니다. 안장을 최대로 낮춰도 페달에 발이 닿지 않아서 탑튜브(안장과 핸들 사이의 프레임) 위에 서서 탔죠. 아주 금방 배웠어요. 여섯살 때 유치원에 그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니까요."

자전거 안장에 앉지 않고 서서 타는 것을 '댄싱'이라고 한다. 주로 급가속을 하거나 언덕을 오를 때 이런 자세를 취한다. 구 회장은 이미 첫 자전거에서 '댄싱'을 배운 셈이다.

―중학교 때도 자전거로 통학했다면서요.

"약수동 집에서 계동의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죠. 서정호 앰배서더호텔 회장이 학교 친구여서, 늘 같이 자전거로 통학을 했습니다."

―대기업 자제들은 대개 기사가 차로 통학시켜주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자전거 타는 게 나는 더 좋았어요."
 

고교 때 죽을 뻔 했다
내리막 달리다 택시와 충돌 5시간 반동안 뇌수술 받아
아버지 "자전거와 緣 끊어라" 그래도 좋으니까 다시 탔죠

―고등학교 때 큰 사고를 당했다면서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동생(구자용 e1 회장)과 자전거로 부산까지 가자고 했습니다. 미군에서 흘러나온 중고자전거를 사서 가다가 대구에서 고장이 났는데, 미제여서 그런지 못 고치는 거예요. 그래서 부산행은 중도 포기했죠. 그렇게 자전거를 열심히 타던 때였어요. 역시 동생과 자전거를 타고 장충체육관에서 약수동 쪽 내리막을 달리다가 버스가 앞서 가기에 '누가 빠른지 해보자' 하는 마음에 페달을 냅다 밟았는데 갑자기 버스 앞에서 달리던 택시가 길가 쪽으로 급정거를 했죠. 급브레이크를 잡았지만 택시와 충돌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머리가 택시 뒷유리창에 박혀있었습니다." 당시엔 자전거에 속도계가 없었지만, 그는 "아마 시속 50㎞는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 사고로 5시간반에 걸친 뇌수술을 받은 그에게 자전거와 연(緣)을 끊으라는 아버지의 엄명이 떨어졌다.

―후유증은 없던가요.

"군대에서 원산폭격할 때 아프더군요. 지금도 찬 바람 쐬면 아파요.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안면신경을 다치지 않아서 멀쩡한 편입니다."

―그렇게 큰 사고를 당하면 무서워서 자전거를 안 타게 된다던데요.

"나는 그런 거 없어요. 그래서 오래 살 것 같아요. 죽을 고비를 일찍 넘겨서. 하하."

―수술 직후에도 자전거를 탔습니까.

"아니요. 대학 때는 테니스를 쳤습니다. 등산도 열심히 다니고. 직장생활 시작해서는 사내 야구팀에서 야구도 했죠.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다시 탄 것은 지난 1997년부터입니다."

―스노 보드도 탄다면서요.

"그건 아이들과 대화를 하려고 배웠어요. 가족끼리 스키 타러 가면 애들은 보드 코스로 가고 보드 얘기만 하니까, 대화가 안 돼요. 그래서 10년 전쯤 보드를 배웠습니다. 용평 레인보우 코스(최상급 슬로프)를 타고 내려올 정도는 됩니다."

―요즘도 논현동 집에서 안양 회사까지 자전거로 출근합니까.

"안 타요, 요즘은. 집에서 회사까지 한 35㎞쯤 되는데 운동하긴 너무 짧아요. 1시간15분쯤밖에 안 걸리거든요. 매주 화·목요일 새벽에 동호회 라이딩이 있는데, 거기 빠지지 않으려고 하죠. 올림픽공원에서 퇴촌~광주~남한산성~하남으로 돌아오는 코스가 있는데 92㎞쯤 됩니다. 오전 6시에 출발하면 9시엔 돌아오죠."

―mtb(산악자전거)로 자전거를 시작했지요.

"요즘은 사이클을 타지 mtb는 잘 안 탑니다. mtb는 산까지 가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들죠. 예전엔 토·일요일을 내내 산에서 자전거 타면서 보냈어요. 보통 아침 9시쯤 타기 시작해서 오후 4시쯤 끝나요. 지금도 마음은 mtb예요. 산에서 타니까 조용하고 공기 좋고, 콘크리트 벗어나서 낙엽 냄새 맡고 하면 아주 좋죠. 꽃 향기보다 나무 냄새가 좋아요. 꽃 향기는 금방 질리는데, 계곡마다 나무 냄새가 다 다르죠. 내가 강원도의 임도(林道)란 임도는 죄다 가봤을 거예요. 등산객들에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

―예전 미국 대선에서 부시와 케리가 붙었을 때 뉴욕타임스가 두 후보의 자전거로 성격을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mtb를 타는 부시에겐 모험가 기질이 있고, 사이클을 타는 케리는 신중한 스타일이라는 것이죠.

"나에게 모험가 기질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mtb 타던 사람들도 나이 들면 사이클로 가게 돼 있어요. 덜 위험한 데다가 무릎에 덜 무리가 가죠. 내가 사이클을 타는 건 그런 현실적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lg 창업주인 연암(蓮庵) 구인회의 넷째 동생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그의 사촌형인 구자홍(66) 회장이 ls그룹을 대표하고 있지만, 구자열 ls전선 회장이 그룹 실무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안팎의 평이다.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할 당시 총 매출 7조원이던 그룹 규모를 10년 만에 30조원대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구자열 회장의 공격적인 m&a와 경영방식이 주효했다. 특히 그는 b2b 위주의 ls그룹 포트폴리오에 프로스펙스를 비롯한 아웃도어 생산·유통과 자전거 유통회사인 바이클로를 더했다.

―프로스펙스를 인수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격적으로 m&a를 하던 때인데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비즈니스를 한번 해보자 했습니다. 내부에서 반대도 꽤 있었죠. 프로스펙스는 다 죽은 브랜드인데 나이키·아디다스와 싸울 수 있겠느냐는 거죠. 프로스펙스에 '아티스'라는 저가 브랜드가 있었는데 이런 농담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어떤 애가 1등을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뛰었느냐'고 물으니까, '남들은 나이키·아디다스 신고 뛰는데 나는 아티스여서 상표 안 보이려고 빨리 뛰었다'고 말이죠. 그 얘기 들으니까 자존심이 팍 상하더라고요. 어떻게든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몽벨'은 일본 출장 갔을 때 자전거숍에 들러서 발견한 브랜드예요. 가격 대비 성능이 아주 좋더군요. 그래서 우리가 라이선스를 따왔고, 독일의 대표적 아웃도어 브랜드인 '잭 울프스킨'도 들여왔습니다."

말 그대로 '한물간' 상표였던 프로스펙스는 ls네트웍스가 인수하면서 전체 스포츠 브랜드 중 나이키·아디다스에 이어 3위로 급상승했다. 특히 워킹화 부문에서는 업계 매출 1위, 인지도 1위의 성과를 올렸다.


자전거 사업 뛰어들었는데…
대기업이 골목상권 침해? 자전거는 빵집과 달라요
정가 받고 a/s 철저해야…국산 전기자전거도 만들 것


―바이클로는 흑자를 내고 있습니까.

"적자죠. 아직 투자하는 단계입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재작년 런칭한 바이클로는 현재 전국 14개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 자전거 숍과는 달리 크고 잘 정리된 매장에 자전거 동호인들을 위한 샤워실 등을 갖추고 있다.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에서 바이클로는 '깎아주지 않는 곳'이란 이미지가 강하더군요.

"정찰제를 고수하는 대신 서비스로 보답하겠다는 겁니다. 대기업이 정가 없이 깎아주는 식으로 시장을 흐려서는 안 됩니다."

―바이클로 직원들 중 국가대표를 비롯한 사이클 선수 출신들이 많던데요.

"많이 고용하려고 애씁니다. 자전거는 파는 사람이 잘 알아야 하고 잘 타야 합니다. 고객에게 가르쳐 줄 게 많거든요."

―최근 대기업이 골목 상권을 장악한다는 비판에 바이클로까지 포함되는 분위기입니다만.

"바이클로 때문에 동네 자전거숍이 망한다고요?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요. 자전거 붐이 일어 동네마다 숍이 늘어나면서 가게들 매출이 떨어질 수는 있겠죠. 우리가 점포를 200~300개씩 낸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원인을 바이클로에 돌리는 건 불합리하다는 생각입니다."

전국 40여개 자전거 숍 대표가 모인 한국자전거판매업협동조합은 그간 ls네트웍스의 자전거 유통업 진출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대형 마트가 재래시장을 망하게 하듯 ls그룹이 동네 자전거숍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구 회장이 이 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인보식 강남스포츠 대표의 오랜 단골이었다는 점이다.

'바이클로 논란' 이후 인터넷의 자전거 동호회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대표적인 자전거 동호회 '도싸(도로사이클)'에 달린 댓글은 대부분이 바이클로를 옹호했다. 주로 "실력 없는 자전거 숍, 바가지 씌우는 자전거 숍보다는 친절하고 기술력 좋은 바이클로가 낫다"는 내용이었다. 반면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서는 "대기업이 자전거 사업을 한다면 생산을 해야지 유통만 하는 건 너무 쉽게 돈 벌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들도 꽤 있었다.

―어쨌든 '대기업 대 영세상인' 구도로 여론이 형성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직영점은 현재 규모로 묶어놓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안 하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결국 하려고 하는 것은 자전거 생산입니다. 올 4월에 우리 자체 브랜드의 자전거를 처음 내놓을 계획입니다. 유통부터 시작한 것은 자전거 시장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시장을 알아야 자전거 제조를 할 수 있습니다. 생산만 하고 유통하지 않는 산업이 어디 있습니까. 또 하나는 전기자전거 개발입니다. ls산전에 전기모터 기술이 있으니 우리가 특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차후에 세계 유명 자전거 브랜드를 우리가 인수하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업을 꼭 대기업이 해야 합니까.

"아무도 안 하니까 자전거를 잘 아는 내가 나선 것입니다. 국내에도 오래된 자전거 기업이 있지만 자전거 붐이 일자 다들 수입산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 숍들을 다녀 보면 자기네 점포에서 사지 않았다고 수리해주지 않거나, 잠깐 손 보면 될 걸 통째로 바꾸라는 식으로 영업하는 곳이 꽤 있습니다. 내가 자전거와 인연이 있고 잘 아니까 제대로 된 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겁니다. 현재 고급 자전거의 대부분이 수입제품인데, 이 자전거의 수입과 유통 시스템도 개선해야 합니다. 자전거는 빵집하고 다릅니다. 빵은 사서 먹는 순간 끝이지만, 자전거는 팔리는 순간이 50% 지점입니다. 그 뒤로 5년, 10년 동안 판매자가 유지 보수해줘야 합니다. 이런 자전거 사업 모델을 만드는 게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는 '대기업 대 영세상인' 구도의 언론보도와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대응하려는 모습이었다.

―자전거 박물관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자전거 문화를 확산시키는 의미로 만들 예정입니다. bmx(묘기자전거) 경기장과 아이들을 위한 자전거 체험장, 자전거 포럼을 위한 건물이 함께 있는 시설을 정부 지원을 받아 만들고 싶습니다. 현재 세계 각국의 자전거 94대를 수집해 놓았습니다. 일단 3월부터 ls그룹 사옥에서 일부 전시를 시작할 것입니다. 박물관 사업에 정부 지원이 여의치 않으면, ls가 소유한 건물에 작게라도 자전거 박물관을 만들 생각입니다."

현재 ls그룹 사옥 지하 수장고에는 1800년대 초 독일에서 제작된 자전거를 비롯해 유럽에서 수집해온 희귀 자전거들이 보관돼 있다. 구 회장 자신이 탔던 자전거 30여대,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의 자전거도 포함돼 있다.


 
자전거가 세상을 살린다
국내수송분담률 2%밖에 안돼 10% 되면 경제효과 20조원
日선 택배도 모두 자전거로…국민건강, 공기정화 다 얻죠

―바람직한 자전거 문화란 어떤 것입니까.

"도쿄는 서울보다 공기가 훨씬 좋습니다. 택배를 모두 자전거로 하지요. 오토바이 택배를 허가해주지 않습니다. 뉴욕·시드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도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공기가 더 좋아질 겁니다. 4대강 자전거길 만들었다고 자전거 선진국 되는 게 아닙니다. 자전거에 대해 훨씬 더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여자들이 비 올 때 한 손으로 우산 들고 자전거 탑니다. 장 보러 갈 때 애를 자전거에 태우고 갑니다. 도로에서 자전거를 우선 배려한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죠. 우리가 그렇게 되려면 우선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타는 사람이 많아지면 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자전거의 국내 수송분담률이 2%도 안 되는데, 5%로 늘면 경제효과가 10조원, 10%가 되면 20조원에 달합니다."

구 회장은 부인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세 자녀 모두 자전거를 탄다. 막내 은성(25)씨는 작년 말 아버지를 따라 4대강 자전거길을 함께 달렸다. 구 회장 부인 이현주(55)씨는 남편이 자전거로 알프스를 넘을 때 "아무 탈 없이 완주하게 해달라"는 뜻으로 이름을 '이완주'로 바꾸겠다고 농담했었다. 구 회장은 "우리 마누라는 스스로 '자전거 과부'라고 한다"며 웃었다. 가족 중 부인 이씨만 자전거를 못 타는데, 올봄에 가르쳐줄 계획이라고 했다. "내가 그랬죠. '만약 전쟁 나서 피란가면 우리 모두 자전거 타고 갈 건데 당신만 못 따라온다'고 말이죠. 하하하."

기업, 자전거와 같더라
오르막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내리막길 나오죠
극한 상황에도 극복하는 법 페달 밟으며 배웠다

―대기업 회장이면 고급스럽고 안락한 취미만 있을 거라고 보통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게들 생각하지만 나는 자전거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선 무엇이든지 극복하는 법을 배웠어요. 자전거로 알프스 넘을 때 군대 3년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내가 유격훈련도 받았는데 이까짓 걸 못하나 하는 생각으로 이겨냈죠. '트랜스 알프스'가 매일 백두산 하나씩 자전거로 넘는 건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죠. 근데 그러면 평생 딱지가 붙잖아요. '중간에 포기한 사람'. 그건 용납할 수가 없어요. 자전거가 기업과 똑같아요. 페달을 밟아야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업힐(오르막)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반드시 다운힐(내리막)이 나오게 돼 있죠. 그래서 누구나 젊을 때 극한상황을 한번 겪는 게 좋습니다. 그걸 겪지 못한 사람은 나중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정신적으로 견디질 못해요."

―자전거와 오토바이 외에 음악과 오디오, 사진 애호가라고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다 해보고 죽어야죠. 경상도 말로 내가 좀 '하고잽이'지. 뭐든지 하려고 든다는 거죠. '애살이 많다'고도 하죠. 뭘 해도 어떻게든 잘하려고 하는 그런 게 좀 있어요. 그 대신 골프는 접대 아니면 잘 안쳐요. 시간이 아깝거든. 그리고 tv도 다큐멘터리 말고는 안 보죠. 집에서는 늘 음악을 듣는데, 기분에 따라 클래식, 재즈, 가요 다 듣습니다."

―'부잣집 아들' '대기업 회장' 이런 편견에 대해 반감이 있습니까.

"특히 어렸을 때는 색안경 끼고 보는 게 많았죠. 예를 들어 대학 다닐 때 친구들에게 '내가 커피 한잔 살게' 하면 나중에 '지가 뭔데 우리한테 커피를 사느냐'는 뒷말이 들려요. 그렇다고 안 사면 '저 자식 되게 짜다. 커피 한잔 안 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런 것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어요. 상처받은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군대 훈련소에서 나와 동갑인 일등병이 싸리 같은 걸로 내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너 사회에서 잘나갔지?' 하는데 내가 이놈을 쥐어박고 영창을 갈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ls그룹에 다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구 회장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는 창업기념일인 11월 11일이 소위 '빼빼로 데이'와 겹치자 전 직원에게 빼빼로를 돌리고, 크리스마스 이브엔 친구인 김창완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ls 직원들과 함께 듣고 싶습니다' 하는 사연과 함께 노래를 신청하기도 했다.

―직원들과는 자전거를 안 탄다고 들었습니다.

"자전거 출퇴근 캠페인 때 한번 타고 안 탑니다. 내가 등산 좋아한다고 주말마다 등산 다니면 산에 못 가는 사람들이 시기하죠. 사내에 자전거 동호회가 있지만, 그 회원들과 자전거를 타면 분란이 생깁니다."

―회식 자리에서도 일찍 일어난다고….

"내가 너무 오래 있으면 대화가 나한테 집중되잖아요. 나는 먼저 일어나면서 '이제 안주는 간다, 너희들끼리 나 씹으면서 한잔 더해라'고 합니다. 하하하. 술 먹을 때는 무조건 높은 놈이 안주죠."

―인생을 자전거에 비유할 때, 그간 가장 힘든 업힐은 무엇이었습니까.

"아직까지는 뭐 그렇게…. 이제 ls전선을 세계 1위로 만들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든 업힐이 되겠죠. 프로스펙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것도 만만치 않은 업힐이고. 글로벌 회사가 안 되면 세계 1위를 할 수 없는데, 늦게 따라가려니까 굉장히 버겁죠." ls전선은 현재 동종업계 세계 3위의 기업이다.

―자전거는 언제까지 탈 생각입니까.

"탈 수 있을 때까지는 타야죠. 이게 후유증이 아주 좋아서 말이에요. 자전거 후유증, 뭔지 알죠?" 그가 왼쪽 눈을 찡긋하더니 껄껄 웃었다. 
 

<조선닷컴 한현우의 커튼콜 201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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