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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3기 초급 중앙공원] 자전거교실 초급반을 끝내며
작성자
문남덕
등록일
2015-04-08
조회수
1041
내용

내일이면 초급과정은 일단락이다.



2014년 연말 즈음 일본 최남단 오끼나와 섬을 여행했었다. 남편과의 25주년 결혼 기념일 기념 겸 이래저래 연말연시인지라 묵은 감정은 털고 새로운 해를 맞아 각오를 다지자는 취지의 여행이었다.



 



패키지 사움이었기에 30여명 남짓한 단체 여행객들이 같이 움직였다. 둘째날 오끼나와 본섬에서 배를 타고 멀리 떨어진 부속섬인 구타카 섬으로 향했다. 일본 할머니 할아버지 몇 분들만 사는 작은섬으로 자전거 대여를 소일꺼리 삼고 있었다. 일행들은 모두 대여비를 계산하고 하나 둘 자전거를 타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워낙 오지인 곳으로 넓디 넓은 섬을 유일한 이동수단인 자전거로 돌아봐야 했던 것이다. 남편은 자전거를 못타는 날 위해 어린이용 의자가 달린 자전거를 좀 더 비싼 가격에 대여했다. 동행했던 친구부부 각각 한 대씩 빌려타고 활짝 웃으며 저 멀리 사라져 갔다. 큐션도 없이 철제로 만들어진 어린이용 의자에 목도리를 풀어 깔고 어찌어찌 앉아 보려 했으나 작은 철제 의자에 나의 큰 엉덩이가 들어갈리 만무 했다. 2인용 자전거도 많더만 왜 1인용밖에 없는거야? 가며 툴툴거리는 것으로 나의 창피함을 위장해야햇다. 남들은 자전거로 이리저리 쌩쌩 달리며 섬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동안 나 혼자 걷다가 뛰다가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동떨어져 인적없는 좁은 길을 맞딱드릴땐 섬뜻섬뜻 공포에 떨며 그간 자전거 못배운것에 대한 후회와 반드시 배우리라는 다짐을 하며 섬을 돌았었다.



 



나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 지리산 자락 오지마을에서 둘째로 태어낫다. 위의 언니와 아래 남동생을 병과 사고로 잃은 나의 엄마는 반 미친 사람처럼 정신을 놓고 울며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자기자신을 학대해 갔다. 그런 엄마를 보다 못한 외삼촌의 권유로 산골을 떠나 인천에서 자리잡게 되었다. 두 아이를 잃은 사건이후로 맏이가 되어버린 내게 나의 엄마는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극도로 염려했다. 언덕을 타고 내달리던 놀이도 시냇가에서 멱감는 것도 좀 더 커서는 썰매나 스케이트 자전거 수영등 그 어떤 위험한 운동도 절대로 허락해 주지 않았다. 심지어 수학여행도 나는 빵 하나와 바꿔야 했다. 그 때 당시로선 친구들과 또래놀이 문화에 낄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 속상했고 나는 내내 나의 엄마를 원망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 했던 그 모든 모질었던 ‘위험한 것 차단하기’는 나의 엄마의 어쩔수 없는 사랑법이었던 것이다. 아이 둘을 잃고 얼마나 노심초사 했는가를 나는 내 나이 셋을 낳고서야 비로소 완전 이해했다. 아니... 아직도 다 이해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전거를 배우면서 아프게 넘어질대 문득 엄마를 원망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서둘러 컴퓨터를 켰다. 그리곤 자전거 교실에 접수했다. 두어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오지않아 접수가 안되었나 의심까지 했을 정도로 기다렸다.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지 나의 엄마의 ‘위험한 것 차단하기’는 내게 놀라운 집중력을 키워주셨다. 해야겠다. 마음먹으면 되도록 해내는 성향으로 자라난 것이다. 비록 자전거는 나이 50이 넘어 시작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지난번 여행에서와 같은 뼈저린 자극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요즘 들어 주차 때문에 운전도 부담스러워졌고 자전거 투어도 많이 생겨나고 또한 우리 동네 부천이 그나마 다른 지역보다 자전거길 조성 등 여건이 좋은점도 자전거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맨 처음엔 아들 둘이 있다 보니 자전거가 두 대나 되는데도 왜 여지껏 한번도 시도조차 안해봤는지 새삼 내 스스로에게 화가 날 정도로 망설여지기도 햇다.



 



그러나 첫 시간엔 공교롭게도 집안에 일이 있어 못가고 그 뒤에 나가보니 비슷한 나이 아줌마들이어서 편안해 졌다. 선생님들의 자세한 설명과 시범, 비슷한 실력의 아줌마 동기들과 같이 배워나가 운동신경이 아주 없진 않은지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자전거와 친구가 되어갔다. 페달에 이리저리 부딪쳐 두 다리가 멍투성이엿다.



 



자전거를 세워둔 상태에서 페달돌리기만 하다가 언덕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며 자전거와 내가 한 몸처럼 중심을 잡기위한 고군분투가 이어졌다. 마치 걸음마 배우나 아이같이 오르고 내리고 수없이 반복,, 드디어 페달에 발을 올리고 두발로 굴려 앞으로 내달렸을때의 그 기쁨과 신기함은 정말로 짜릿했고 내 스스로가 기특했다.



 



그렇게 1차 관문을 지나니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 등나무 화분을 끼고 도는 고난위도 S자 곡예운전을 해야만 했다. 일단 출발해서 등나무 화분근처에 도달하면 핸들을 꺽는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어찌된 일인지 페달을 구를수가 없어 넘어지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보니 S자 수업은 무서워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복병이 되어버렸다. 넘어지면서 핸들에 가슴부위를 찧어서 시커먼 멍이 야구공만하게 그려졌다. 식구들은 놀라면서도 한면 비웃었다. 그깟 자전거가 앞으로만 가면되지 시커멓게 멍이 들면서 까지 배우나며 핀잔을 했다. 내일이면 초급과정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 바로오늘 드디어 S자 등나무 돌기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아마도 내가 동기생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성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남들은 일찌감치 부드럽게 완수했던 미션인지라 내색도 못하고 나혼자 속으로만 기뻐했다. “앗싸! 올레!! 드디어 해냈다!!” 기뻐서 혼자 몰래 환호하면서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모든 일상을 ‘위험한 것으로부터 차단’해주려고 무던히 애쓰셨던 나의 엄마! 넓고 깊은 사랑에 감사하면서 그 사랑을 먹고 자라나 가정을 일구고 내 아이들에게 내가 받은 사랑을 내주면서도 내 스스로를 위해 도전하고 노력해서 내 것으로 삼는 삶에 감사한다. 저녁을 먹으며 당당한 목소리로 식구들에게 말했다. “ 나.... 자전거 타면서 한손으로 빠이빠이도 가능해!” 거창하게는 환경지킴이로서 나라에 일조하고 작게는 건강과 재미 거기다가 성취감까지 맛보게 된 자전거 친구를 만나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이런 여러 가지 결실을 이루도록 이끌어 주신 선생님들과 함께 고생한 23기 동기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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