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뉴스

  • 스크랩
  • 전자점자 뷰어보기
  • 전자점자 다운로드
뉴스상세조회 테이블
[인문학 산책 ①] 사라져가던 조선왕실의 태실, 소중한 문화자원으로 가꾸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9-01
경기도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41개소 가운데 31개소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문화유산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관리해온 경기도가 일제강점기 일제의 의도적인 훼손과 근대화시기에 개발과 산업화 과정 속에서 훼손된 태실(태봉) 보호에 나섰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던 태실. 경기도가 가꾸어온 태실 문화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본다. 글. 김화숙 사진. 유승현
고양 서삼릉 태실  ⓒ 


왕실 자손의 태를 봉안하다 예나 지금이나, 아기가 태어나면 탯줄을 자른다. 고도로 과학이 발달한 요즘도 탯줄에서 나온 혈액인 제대혈을 따로 보관한다. 선조들도 탯줄을 귀하게 여겼 다. 태아의 생명력과 직결되는 태(胎)를 신성하게 여겼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태를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보관했다. 왕실에서는 태를 더욱더 섬세하게 관리했다. 왕실에서 태어난 자손의 태는 국운과 관련이 있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왕세자나 왕세손처럼 다음 왕위를 이어 받을 사람의 태는 따로 봉안했다. 나중에 이들이 왕위에 오르면 태실은 태봉(胎峰)으로 일컬었다. 그래서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길한 곳으로 꼽히는 장소에 태실을 만들었다. 태를 이송하는 절차도 만만하지 않았다. 어느 곳에 보관할지 장소를 정하는 것은 물론 호송하는 사람과 감독자들을 선발해 이송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했다. 태실을 훼손하면 국법에 따라 엄벌을 받았다. 태의 주인이 왕위에 오르면 태실은 태봉으로 봉해졌다. 태봉이 되면 내부와 외부의 장식이 달라졌으며, 태봉이 있는 마을은 지위도 격상되었다.

포천 태봉 석조물(포천시 향토유적 제30호)  ⓒ 


일제가 태실을 훼손하다 이렇게 중요한 태실은 왜 사라지게 되었을까. 그 배경에는 일제의 음모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태실을 왕실에서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이를 전담하는 관리도 있었다. 하지만 일제가 조선을 장악하면서 왕실의 존엄성을 헤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1910년 11월 일본 궁내성 소속으로 설치한 기관인 ‘이왕직’은 조선 왕조를 ‘이씨 조선’이라고 칭하며 조선의격을 낮추었으며, 순종이 서거하고 2년이 지난 1928년부터 태실 정리에 나섰다. 조선총독부는 1929년을 기점으로 ‘망국의 왕실을 관리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전국 곳곳에 있던 태실을 경기도 고양시 부근에 모았다. 기존에 정성스럽게 관리되던 태실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부근에 마치 공동묘지처럼 집단으로 설치되었다. 이는 명백하게 조선왕조의 품격을 훼손하는 작업이었다. 또한, 조선의 멸망을 백성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도 숨어있었다.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꼽히던 태실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일제였다. 조선총독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무덤이 그 자리에 들어서기도 했다. 언제 어떻게 태실의 태항아리와 지석이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나마 1929년 3월 1일자 <동아일보>의 기사에서 “조선총독부 이왕직이 전국의 명당지에 있는 39기의 태실을 종로구 내수동의 임시보관소에 두었다가 추위가 물러가면 서삼릉으로 이전한다”는 내용을 통해 그 계획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도굴도 문제였다. 태를 담은 태항아리는 대부분 조선백자로 거의 대다수 백자가 도굴되었다. 서삼릉으로 태항아리를 이전하는 중에 일제의 질그릇으로 바꿔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도굴꾼이 조선백자를 일본의 질그릇으로 바꿔치기한 태항아리  ⓒ 


경기도에 남아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 ‘태문화’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조선 왕실의 독특한 문화로, 학계에서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일제가 태실을 훼손하면서 태실이 지니고 있던 공간적 특성과 그 주변을 둘러싼 문화재의 의미를 온전히 알 수 없게 되었다. <조선의 세계적인 문화유산 태실>에 따르면, 조선 후기까지 파악된 태실은 전국에 130여 곳이었다. 그중 서삼릉으로 옮겨 온 태실은 54기로, 여전히 방치된 태실이 많다. 200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를 통해 경기도에서 확인된 태실은 25개소. 10여 년이 지난 작년에 경기도는 11월부터 12월까지 25개소에 대해 실태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13개소에서 잔존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사라지거나 위치가 정확하지 않은 곳이 12개소로 나타났다. 경기도는 잔존을 확인한 13개소 가운데 시군 향토유적으로 4개소를 지정했다. 가평 중종대왕 태실 및 비, 화성 정숙옹주 태실, 포천 만세교리 태봉, 포천 익종 태봉이다. 태실비를 비롯해 관련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곳도 여섯 곳이다. 가평 영창대군 태실비, 김포 조강리 태실, 안산 고잔동 태실, 연천 회억옹주 태 실, 포천 무봉리 태실, 안성 영조 옹주 태실 등이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은 세 곳이며, 2008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를 통해 경기도에서 확인된 태 실은 25개소. 10여 년이 지난 작년에 경기도는 11월부터 12월까지 25개소에 대해 실태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13개소에서 잔존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사라지거나 위치가 정확하지 않은 곳이 12개소로 나타났다. 세공장녀 정소공주 태실을 포함한 12개소는 이미 흔적을 찾을 수 없거나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경기도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남아 있는 태실에 대한 전수조사를 현재 진행하고 있다. 올해 말 전수조사가 완료되면 문화재로 지정하거나 경계 울타리, 안내판 등을 설치해 보호, 관리할 계획이다.

  ⓒ 


본문 바로가기
뉴스이전글다음글
다음글 [안전한 경기도] “독감 예방접종으로 코로나19 방역체계 혼란을 막아주세요”
이전글 [특집 ①] 기본소득,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새로운 대안
  • 정보제공부서 : 부천시 콜센터
  • 전화번호 : 032-320-3000

홈페이지의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얼마나 만족하셨습니까?